일본 불교문화의 선구자, 백제승 관륵
일본 속 백제이야기 (7) 박재용 충청남도역사문화 연구원 연구실장
도정신문 | 입력 : 2018/08/31 [10:33]
▲ 목조관륵승정좌상
최근 백제의 금동관음보살입상이 일본에서 발견되어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게다가 공주 마곡사가 세계유산에 등재되면서 국내외에서 충남지역 불교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다. 백제의 불교문화는 그 중심에 자리하고 있어, 백제문화의 세계유산적 가치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백제 불교문화의 발전과 융성을 이끈 승려들에 관한 기록은 우리나라 자료에서는 찾기가 힘들다. 이에 비해 일본에는 백제 승려들과 관련된 많은 관련 전승들이 전해지고 있으며, 이들에 대한 업적을 오늘날까지 기리고 있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관륵(觀勒)이다. 관륵은 백제 무왕 3년(602) 일본에 파견되었다. 백제의 도움으로 건립된 일본 최초의 사찰인 아스카데라(飛鳥寺)에 머물면서 삼론학의 대가로서 쇼토쿠(聖德) 태자의 스승이 되었다. 이후 624년에는 일본 불교계의 초고위직인 승정(僧正)에 최초로 임명되었다. 승정은 여러 사찰들의 유래와 각 사찰의 승려 현황, 특히 출가 시기 등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즉 이 시기 일본에서는 관륵에 의해 불교교단의 통제기구인 승관제(僧官制)가 실시되면서 비로소 불교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관륵이 남긴 자취는 오늘날 나라(奈良) 지역을 중심으로 여러 곳에 걸쳐 확인된다. 대표적으로 관륵이 일본에 건너간 지 4년 후에 완성된 호류지(法隆寺)의 경장(經藏)에 안치되어 있는 목조관륵승정좌상(10세기 제작 추정)이 있다. 일본의 국보인 경장은 대승불교 관련 대장경을 보관하던 곳으로, 내부의 목조관륵승정좌상 역시 중요문화재로 현재 일반인들에게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또한 금당(金堂)에는 유명한 삼존불상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인 아미타삼존상 대좌 뒷부분에 그려진 인물화의 주인공을 관륵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아미타상의 작자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관륵을 아미타로 추앙하며 제작했을지도 모르겠다. 한편 관륵은 일본에 건너갈 때 역법과 천문지리서, 둔갑방술서 등의 서적도 함께 가져갔다고 전해진다. 이 시기 백제는 이미 여러 중국력을 사용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고, 일찍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있어 천문기상을 관측할 수 있는 기술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천문기술과 경험들은 승려인 관륵을 비롯하여 많은 박사들에 의해 그대로 일본에 전해져 물시계의 제작과 시행, 뒤이어 최초의 천문대인 점성대(占星臺)의 건립에 중요한 근간이 되었다. 실제 점성대가 세워진 아스카 연못 유적에서는 관륵 이름이 새겨진 목간이 발견되기도 했다. 백제의 불교문화가 일본 불교에 미친 영향은 더 이상 재론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절대적이었다. 그러나 불교문화적인 면뿐만 아니라, 관륵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백제의 승려들은 고급 지식인으로서 백제의 선진적인 제도와 기술도 함께 일본에 전했다. 오늘날 일본의 풍요로운 불교문화의 저변에는 백제의 숨결이 깃들어 있다.
출처 : 충청남도 홈페이지
도정신문님의 기사입니다.
 |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