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의 금동불을 조영한 백제인들

일본 속 백제이야기 (8) - 박재용 충청남도역사문화 연구원 연구실장

도정신문 | 입력 : 2018/09/10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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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최대 금동불인 나라의‘도다이지 대불’


일본 나라(奈良)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금동불(좌불)이 있다. 흔히 도다이지(東大寺)의 대불(大佛)이라고 일컫고 있다. 도다이지는 나라(奈良)시대에 쇼무(聖武) 천황(재위: 724~749)이 죽은 자식을 위해 발원한 수도의 중심 사찰로서 40년에 걸쳐 조영되었다. 현재 대불이 안치되어 있는 대불전 또한 세계 최대의 목조건물로 일본의 국보로 그 가치를 빛내고 있다.
 
전체 높이가 약 15m(무게 약 450톤)에 달하는 대불은 화엄경에서 말하는 노사나불로 대우주를 상징하고 있다. 752년 완성될 때까지 거의 5년이 걸렸다. 대불이 완성된 후 대불전이 만들어졌고, 이후 2차례의 화재로 인해 대불전은 물론 대불도 상당 부분 훼손되었다.
 
이후 근세에 들어와 대불전이 재건되면서 대불도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대불이 모셔진 도다이지는 나라의 여러 역사유적과 함께 1998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고, 일본 불교신앙의 중심이자 일본에서 각광받는 관광명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러한 도다이지의 대불을 백제인이 조영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일본의 정사인 「속일본기」에 의하면 백제에서 건너간 덕솔 국골부(國骨富)의 손자인 국중련공마려(國中連公麻呂)가 대불을 조영했다고 한다. 국골부는 662년 백강전투 이후 일본으로 망명한 백제관인이었다. 그 후광을 이어받은 손자 공마려는 746년 조불(造佛)장관에 임명되어 대불조영을 지휘하게 된다. 사료에 따르면 당시 조불공들이 감히 대불을 조영할 엄두를 내지 못하였으나, 공마려가 매우 뛰어난 기술을 발휘하면서 대불을 주조할 수 있었다고 하여 당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이러한 도다이지의 금동대불을 완성하는 데는 대량의 금이 필요하다. 이때 금을 헌납한 인물은 백제왕의 후손인 경복(敬福: 697~766)이다. 경복은 의자왕의 아들인 선광(善光: 601~687)의 증손이다. 선광은 일찍이 일본에 파견되었다가 백제가 멸망하고 부여풍의 부흥운동마저 실패로 끝나자 그대로 일본에 정착하였다. 일본 조정에서는 왕족인 선광을 특별히 예우하여 그 후손들과 함께 고위 관직에 중용하였다.
 
당시 일본은 수도인 나라에 국가사찰로서 거대한 규모의 도다이지를 건립하면서 재정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이때 경복이 일본의 동북 국경 지방의 지방관으로 있으면서 일본 최초로 금광을 개발하는 데 성공하였다. 여기서 얻은 900냥의 황금을 일본 조정에 헌납함으로써 도다이지의 대불(大佛) 조성이 비로소 완성될 수 있었다. 그 공으로 경복 자신은 대폭 승진하여 종3위 궁내경(宮內卿: 황실재산 관리책임)과 말년에는 요직인 형부경(刑部卿: 법무부 장관)까지 역임했다.
 
그러한 측면에서 일본의 불교문화를 상징하는 도다이지에는 백제인의 장인정신과 숨결이 오롯이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의 도다이지를 방문한다면 다시금 금동대불을 조성했던 백제인을 떠올려보길 기대한다.

 

출처 충청남도 홈페이지

          도정신문님의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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